상상과 호기심의 기적
나는 지금 상상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소개하려 한다. 그는 르네상스가 낳은 최고의 천재라고 불린다. 해부학과 생리학, 기계공학, 도시공학, 공연예술 등 그의 관심이 가는 모든 분야에 손대지 않은 바가 없을 정도인데, 오늘날로 치자면 만능엔터테이너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활동한 기간에 비해 주요 작품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어렸을 때 있던 공방시절에 스승 및 동료들과의 합동작품인 『그리스도의 세례』, 『지네브라데벤치의 초상』, 『수태고지』 와, 미완성작인 『동방박사의 예배』, 『성(聖)히에로니무스』을 그렸으며, 밀라노 시절에는 산타마리아델레그라체 성당 식당의 『최후의 만찬』, 『암굴의 성모』, 소묘만이 현존하는 조각 『스포르차기마상』이 만들어졌다. 피렌체로 다시 돌아와서는 『앙기아리의 전투』를 그렸고, 이후 밀라노, 피렌체, 로마 등을 돌아다니는 동안에 『모나리자』, 『성 안나와 성모자』, 『세례자 요한』을 그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조금 떨어진 빈치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빈치사람 레오나르도" 라는 뜻인데, 당시 피렌체의 유명한 공증인이었던 세르 피에로(Ser Piero)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적자가 아닌 서자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다빈치 가문은 직업적으로 피렌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명망 있는 가문으로써, 빈치의 도심에도 그들 소유의 집이 있었으나 레오나르도와 같은 서자(庶子)의 출산은 통상적으로 가족이 소유한 시골집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레오나르도 또한 빈치의 시골집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레오나르도는 빈치에서 시골생활에 푹 빠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자였던 레오나르도는 제대로 된 학교교육은 받을 수 없었다. 그 대신 그를 둘러싼 자연환경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나갔는데, 그러한 자연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과수원에서, 포도밭에서, 올리브나무 숲에서 밭을 갈고 도랑을 파며 씨를 심고 추수를 하며 지냈다. 특히 올리브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올리브유는 와인 이상으로 지방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특산품이었는데, 이렇게 올리브 나무에서 얻은 열매는 가공을 위해 올리브 방앗간으로 보내서 빻거나 압축하여 가공하였다. 레오나르도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과정을 자주 지켜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러한 장면들이 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서인지 훗날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가루물감을 제조하기 위해 올리브 압축기에서 영감을 얻은 물감 빻는 기계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레오나르도는 빈치에서 대개 10~11세의 아이들이 다니는 ‘수리학교’ 에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배움에 있어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 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계산법을 배운지 몇 달 되지 않아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자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질문 공세를 쏟아 부었고, 오히려 선생님보다 앞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레오나르도는 음악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그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의 상상력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그림과 조각을 멀리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새 학기를 맞는 학생 여러분 상상과 호기심은 기적을 낳아줍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상상과 호기심을 포기하지 마세요. 이것들은 여러분들의 인생에 기적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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